중국의 역사서 서경, 춘추, 사기 등의 고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에게 관포지교로 널리 알려진 관중과 포숙아 이야기이다. 약 2,650년 전에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겠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야말로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고 또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기록하고 음미하며 삶에 적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본다.
관중과 포숙아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은 중국의 고대사인 요순시대 수백년, 그리고 하나라 약 500년, 은나라 약 500년 그리고 태공망 여상의 주나라 무왕부터 시작하여 13명이 왕위을 잇다가 그 다음부터는 중국이 천자에 의해 전국토가 다스려지지 못하고 여러 나라로 쪼개져 힘을 합하기도하고 싸우기도 하는 514년간의 패자들의 나라, 즉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주나라 13대왕 평왕이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 난 이후부터 춘추시대가 시작되며 공자가 속해 있던 노나라에서 공자에 의해 기록된 춘추라는 역사서에서 춘추시대라는 말이 기원한다고 한다.
주나라 초기에는 약 1,000여개의 제후국이 있었는데 120개로 줄었다가 평왕 이후에는 약 10여개 국으로 줄어들었다. 이들 가운데 춘추 5패라 불리는 나라-제후는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 초나라 장왕, 오-부차, 월-구천 등인데 그 맨 처음인 제나라 환공 때 이야기이다.
제나라 환공의 아버지 희공은 태공망으로부터 13대째이며 아들이 셋이 있고 그 이름은 제아, 규, 소백이었고 큰 아들 제아가 태자로 봉해져 있었다.
어느 날 세째 아들인 소백(훗날 환공)이 자기의 스승이며 자문역인 포숙아에게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포숙아는 말조심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어보자 .."나는 내 형이 차마 못할 짓을 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요"라며 큰 형이 친누이인 문강과 연애하는 장면, 즉 근친상간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두 차레가 아닌 여러차례 보았기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이후 문강은 노나라의 임금에게 시집을 갔고 이 일은 아는 사람은 소백과 포숙아 뿐이었다. 공자 맹자 이전 시대라 그런지 소백의 아버지 희공 또한 자신의 친동생을 이성으로 사랑한 걸 보면 근친간 사랑에 대한 질서가 바로잡혀 있지 않았던 시대이었던 것 같다.
둘째 아들 규의 스승이 은퇴하자 포숙아는 규를 위해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친구인 관중을 추천하게된다. 즉, 규-관중, 소백-포숙아로 짝을 지어 섬기게 되고 첫째 아들 제아(양공)가 왕위에 즉위하게 되고 아버지때부터 우대받던 사촌동생인 공손무지에 대한 우대를 폐지하면서 권력다툼이 시작되는데 권력욕이 있는 소백이 은근히 이런 권력투쟁에 개입하게 된다.
노나라로 시집간 누이 문강이 15년이 지나 남편(노나라왕)과 함께 귀국하였을 때, 양공과 문강이 젊은 시절 누리던 근친상간에 정염이 살아나고 이를 남편(노왕)이 알게 되어 죽일놈/년하며 파란을 일으키지만 오히려 양공의 지시를 받은 아들 팽생에 의해 남편(노왕)의 늑골이 으스러져 죽게 되고 이 사실이 노나라에 알려져 국가간 외교전으로 비화되어 이번엔 팽생이 또 죽임을 당한다.
이런 지략과 모사뒤에 관중과 포숙아의 지략이 숨어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음은 권력욕을 불사르고 있던 두 친구의 숨의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양공과 문강의 불륜관계가 계속되자 이복형제인 규와 소백은 위험을 느끼고 일단 규-관중은 노나라로, 소백-포숙아는 제나라의 속국인 거나라로 망명을 하게 된다.
제나라의 정치가 양공의 무분별한 생활로 엉망이 되자 사촌동생 공손무지가 난을 일으켜 제아를 죽이게 되고 사촌 공손무지도 누군가에게 그만 살해되고 만다 ( BC 685년 ).
무주공산이 된 제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규와 소백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시작된다. 노와 거에 있던 두 형제가 이끄는 군대가 서로 빨리 귀국하여 정권을 차지하려고 할 때 관중의 별동대가 먼저 소백의 군대가 오는 길목에 매복했다가 화살을 소백을 향해서 날려 명중시킨다.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에 맞고 소백은 죽은 채 시늉을 하고 있다가 먼저 수도 임치에 먼저 도달하여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때 관중은 규에게 소식을 전해서 자신이 이겼음을 전하고 느긋하고 돌아왔으나 제나라 군대가 어느 새 수도를 점령하고 관중과 함께 온 노나라 군대를 포위해 버려 더 이상 싸울 필요없이 소백군의 승리가 되어버렸다. 이 때 둘째 아들 규는 죽임을 당하고 관중은 포로가 되었다.
포숙아는 소백에게 화살을 쏜 원수 관중을 풀어줄 것은 물론 그를 신하로 중용할 것을 요청한다. "주군께서 제나라만 다스리시길 원하신다면 이 포숙아 한 사람으로 충분할 것이나 만약 천하의 패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관중이 아니면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 후에 나온 말은 관중을 풀어 주는 것은 물론 그를 포숙아의 말대로 중용하게 되며 포숙아보다 더 높은 지위에서 관중을 부리며 주변 초나라, 수나라 등을 그와 함게 정벌하며 포숙아가 말한 대로 소백 즉 제나라 환공은 관중과 함게 약 30여개 국을 정벌하게 된다.
관중은 부국강병책과 정전법을 실시하였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였으며 환공이 약 43년동안 제위하는 동안 기틀, 안정 및 발전을 하는데 1등 공신이었으며 제위 41년째 죽게 된다.
약 700년 후 나타나는 후한의 제갈공명이 자신과 견줄만한 사람이라 평했으며
약 100년 후 공자는 관중을 이렇게 평한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하여 제후의 맹주가 되게 하고 천하의 질서를 회복했으며 그 은혜는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만약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랑캐의 풍속을 강요당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위 내용만 보면 관중의 정치력이 돋보이지만 포숙아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서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고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때문에 바뀌지 않으며 서로 돕고 의지함이 일관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관중이 평민 출신으로 젊은 시절 굉장히 곤궁했는데 그때마다 포숙아는 사심없이 관중을 도와주었으며
관중은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가난할 때 포숙아와 함께 사업을 했었다. 이익을 남기면 내가 꼭 더 가져가기도 하고 포숙아를 속이기도 하였는데 포숙아는 나를 탐욕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포숙아를 위하여 무슨 일은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잘못 되어 포숙아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포숙아는 나를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운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관직에 세 번 진출하여 세 번 모두 명퇴를 당했지만 포숙아는 나를 무능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못 만난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이나 병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지만 모두 대패하고 도망 왔다. 그러나 포숙아는 나를 비겁한 놈이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노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와 소백이 정권을 다투다가 규가 패하자 규를 따르던 소홀은 주인을 따라 자결했지만 나는 뻔뻔하게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없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사소한 모욕을 견뎌내고 결국은 천하에 명성을 날리게 될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분은 부모지만
나를 진정 알아준 친구는 포숙아였다.
포숙아는 제환공(소백)에게 관중을 추천하고 자신은 관중보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관중을 상전으로 모셨다.
근친상간이 자주 일어나고 내 편이 아닌 다른 편을 죽이고 적국을 이기기 위해 합종연횡이 자주 일어나던 시기 즉 도덕과 윤리 등의 가치관이 지금보다 훨씬 뒤떨어지던 시대에도, 원수도 은인이 될 수 있으며 친구간의 신뢰가 어려운 상황들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두 사람의 우정이 돋보인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뛰어난 능력을 칭찬하면서도
그 사람을 사람을 볼 줄 알고 또 인정하며 띄워주는 포숙아를 또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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